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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분위기에 나도 끼었다. 오지님의 관련 포스팅을 보고 뭔가 정리해야할 것 같은 께름직한 기분에 무작정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서태지를 욕하기보다 서태지를 촉매로 반성하고 넘어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책임한 책임 전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음반 리뷰가 아니다. 일종의 자아비판이며(절대 서태지빠는 아니지만) 사춘기 놀이에 빠진 어른들에 대한 꾸짖음이다. '언니네 이발관'이 나오고 몇 편의 청춘영화를 보면서 지금 나의 화두는 '어른'이 되었다. 386과 10대 사이 중간 세대는 점차 잊히고 있다. 어떻게 힘을 꽉 주고 있어야 하는 걸까?
서태지, 그리고 X세대의 환상 의외의 커밍아웃이었다. 서태지 음반이 나오기 무섭게 ‘So Hot’에 빠져있던 30대 후반 아저씨, 아이포드에 성시경 노래만 넣고 다녔던 30대 언니, ‘동방신기가 내 인생을 바꿨다’는 20대 후반 동생이 순식간에 서태지 예찬론자로 옷을 갈아입었다. 잘 가는 몇 개의 오래된 게시판도 서태지로 도배됐다. ‘천재병’이라는 심리학 접근부터 ‘믿습니다’ 수준의 종교적 주문까지 다양한 말들이 오갔다. 나는 2008 여름가수들이 경쟁하듯 등장하는 ‘빠삐놈’에 정신이 팔려있다가, 서태지 음반 구입에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20대 중반~40대들의 음반구매 줄서기 대소동을 보고 갑자기 서글퍼졌다. 90년대 초반, 한국에 ‘X세대’라 불렸던 세대가 있었다. 한 캐나다 작가가 ‘정의할 수 없다’는 의미로 ‘X’를 사용했는데, 한국에서는 자기만 알고 쇼핑만 좋아하는 세대로 규정됐다. 한마디로, 이기적인 ‘X같은’ 세대라는 의미였다. 마케팅 차원에서 좋은 말로 바꾸면, X세대의 등장은 구속 받지 않는 개인주의 세대의 도래를 의미했다. X세대들이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는 마케팅에 낚여 들고 있던 때, ‘난 알아요’라는 뚜렷한 주관을 가진 랩그룹이 등장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신세대’로 낙인 찍혔던 우리들은 무의식 중에 ‘난 알아요’라고 주장하는 고집의 미덕을 깨달았다. 서태지의 랩은 일종의 선언문처럼 단호하고 강렬했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라는 문장에선 어떤 우유부단의 순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선동의 시간이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음악에 빠져든 한 청년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 운을 띄우면서, 메탈친구들(크래쉬)까지 불러서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라고 외쳐댔다. 세상을 왜 바꿔야 하는지도 몰랐던 소비주의 문화 1세대의 아이들은 서태지를 통해 말하는 법을 배웠다. 서태지와 90년대를 보냈던 빠순이와 빠돌이들은 ‘상징의 언어’를 사랑했다. 서태지는 문화혁명가였다. 그의 노래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대한다는 ‘면죄부’가 되었다. 90년대 아이들은 그렇게 자랐다. 그들은 ‘상징의 시위’를 사랑했다. 거리에서 짱돌을 들기보다는 음악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혁명을 하길 원했다. 소비가 혁명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서태지의 컴백은 일종의 신호등 역할이었다. 스스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원하는 어른이 된 X세대들은 서태지가 돌아올 때마다 청춘의 마일리지를 돌려받는 기분이었다. 서태지가 무슨 음악을 하든 중요하지 않았고, 계속 음악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했다. 변치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꿋꿋이 걸어가는 서태지의 모습은 X세대가 그렸던 미래의 로망이다. 그러므로 7월 29일 대형 서점 음반매장 앞에서 서 있던 기나긴 줄은 일종의 로망 탈환 대작전이었다. 16년 동안 음악에만 집중해오신 ‘컴백’ 서태지 달인님의 귀환. 반갑습니다.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우리들만의 추억, 다시 상기시켜줘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가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내는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서태지 추종자들이 만들었던 ‘소비는 혁명’의 가치는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사장님의 손을 거쳐 ‘소비는 쾌락’으로 바뀌었다. ‘오빠 아이돌 종합선물세트’ 상품들과 인터넷 시대가 만나 팬클럽은 피라미드 조직처럼 불어났고, ‘빠순이’ 문화는 좀더 말초적이고 맹목적으로 변질됐다. 오빠의 음반을 사는 이유는, 오빠의 음악과 철학을 공유하기 위한 게 아니라, 오빠에게 돈을 안겨주기 위해서다. 대중가요 문화 변천사만 짚어봐도, 실용정부의 도래가 당연해 보일 지경이다. 서태지와 서태지의 팬들이 한 세대를 대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세대의 징후를, 세대의 패배주의를 엿보게 하는 지점이 있다. 서태지는 ‘아이들’과 헤어진 이후 여러가지 깜짝쇼를 벌였으나 마케팅에만 영향을 미쳤다. 마찬가지로, 진정성 있는 대중문화가 몰락하고 기획상품 음악이 세상을 지배하는 동안, X세대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 채 그럴싸한 말만 늘어놨다. 미시적으로 접근한다면, 개인주의의 가치를 전파하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포장하는 기술을 전수했다는 성과는 있다. 영화와 음악을 비롯한 각종 문화상품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문화를 아이콘화하는 자세는 그 세대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지금 이 글이나, 이 글이 실리는 잡지의 모습처럼 말이다. 서태지는 8집에 이르러서야 서태지가 느껴지는 음악을 내놨다. 3곡이 실린 싱글만 두고 섣불리 판단하자면, 서태지는 오랜 장르 방황을 끝내고 자신이 만든 동화 속 세계에서 여유롭게 노니는 전자음악을 만들어낸 듯하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그의 음악을 두고 ‘생각보다 좋지만 혁신적이지 않다’는 중평을 내놨다. 그런데 꼭 혁신적일 필요가 있을까? 서태지와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혁명과 혁신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내지 못해 시대에 대한 죄책감을, 실존에 대한 수치심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혹자는 서태지의 이번 싱글이 ‘혁명적’이지 않다고 화를 낸다. 하지만 대부분은 변화에 대해 안도의 숨을 쉰다. 조금 누그러진 그의 목소리에서 ‘이제는 즐겨도 좋지 않을까’란 제안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아이 섬’에 대한 판타지나, 콘서트 우주선 놀이 등을 통해 서태지는 이제 스스로 땅에 발을 딛고 호흡하는 청년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혁명의 주술을 끝났다. 상징으로서 서태지와 뮤지션 서태지를 구분할 때가 됐다. 그리고 서태지 뒤에 숨어 ‘사회비판적인 척’ 가장했던 당신들, 혹은 우리들은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라는 외침은 헛된 되돌이표에 지나지 않을까? 과거의 로망인가, 현재의 목표인가. 세대의 그물이 부담스럽다면 ‘개인’의 차원에서 더 늙기 전에 풀어봐야 할 숙제다. D&C 2008년 9월호일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