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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보다 턱없이 짧은 시위 경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자면, 대개 시위대는 사수대와 본대로 나뉜다. 한창 데모하던 시절 언론의 떡밥으로 등장했던 게 사수대였다. 화염병 던지고 쇠파이프 들고 전경들과 맞섰다. 그 뒤에는 본대가 있었다. '본'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시위의 심장은 본대다. 전경과 싸우러 나간 게 아니다. 나라가 감추고 언론이 감추는 '진실'을 알리러 나간 것이다. 구호를 외치고 전단지를 돌렸다. 5.18 진상규명을 하자고 외쳤고 민주노총은 정당하다고 외쳤다. 돌이켜보면 시위대의 역할은 지극히 '계몽적'이었다. 하지만 진실이 가려진 사회에서 '계몽'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지금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데모의 기억이 화염병과 쇠파이프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들, 레닌의 '폭력혁명' 단계 덕분에 '피흘리지 않고 얻는 평화란 없다'라는 생각이 있었다.(뭐, 내 생각도 아직 크게 변하진 않았다) 하지만 사수대의 행동거지만이 '시위'이고 본대의 외침은 부록이라는 시선은 지극히 조중동스러운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행진한다. 그런데 전경들이 '집시법 위반'이란 이유로 막아선다. 그러면 행진하기 위해 싸움이 벌어진다. 사실 이후 행진은 쉽지 않다. 사수대는 무너지기 일쑤고, 백골단은 저승사자같은 공포를 안기며 학생들은 연행해갔다. 결국은 뿔뿔이 흩어져서 학교앞 술집에 모여 나라를 한탄하며 소주나 푸는 게 고작이었다. 다음날 신문엔 또 '폭력시위'라고 나오겠지만 그래도 내 목소리를 한 사람이라도 들었으면 보람있다는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서 사실, 사수대만 영웅이 되는 구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튼 그 시절 열혈 사수대 남자아이들의 마음 속에 무용담 한두개는 남아, 본대의 기억보다 오래오래 회자되고 있을 것이다. 그 강력한 무용담들이 '데모'와 '시위'의 환상을 만들었다. 사수대(음, 아무튼 앞서 나가 있는 분들)의 활약이 이번 시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시위의 핵심이 '전경차 끌어내기'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모여서 전경차가 움직이는지 아닌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분노로 피끓는 아이들은 '어제 엎었어야한다'는 둥 이야기하며 분해한다. 전경차 흔들거리는 걸 구경하느라 사람들의 입에서 구호가 사라졌다. 왜 흔들어야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흔들리면 시민의 '힘'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 좋아한다. 전경차를 치우려고 하는 이유는 막힘없이 '행진'을 하기 위해서다. 세상(특히 명박과 한나라당)에 좀 더 시민들의 의지를 알리고 싶은데 그런데 장애물이 생겼다. 그래서 치우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발언을 멈추면 안된다. 그게 '고시철폐 협상무효'이든 '쥐새끼를 때려잡자'든 '이명박은 물러가라'든 목이 쉬어라고 외쳐대야만 한다. 광장에 모인 이유는 민심을 알리기 위함이다. '외침'이야말로 시위의 핵심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지치고 있다. 가뜩이나 귀막힌 대통령인데 목소리도 줄어든다. 그는 아직도 광장의 모인 국민쯤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배후설이 알려준 것은, 그에게 국민은 친북세력에 부화뇌동하는 냄비들로, 보수진영에서 그럴싸한 '중상모략'을 펼치면 우매하게 넘어올 거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차피 진압 한 번 펼치면 흩어지는 존재들이니, 몇 번 겁주면서 버티면 저절로 떨어져나갈 거라 생각할 것이다. 하물며 자신은 '포기를 모르는 인간'이라는 끈기까지 강조했으니까. 차라리 촛불로 위협하기보다 머슴 퇴직금으로 국민들이 몇천억 돈 모아서 준다고 하면 솔깃해할 쥐새끼다. 이런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은 쉽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는 대화 자체가 안된다. 그렇다면 시민들도 '포기를 모른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이 시위는 예상보다 지리멸렬하고 지루하게 길어질 것이다. 지치는 쪽이 진다. 다함께 우물쭈물하고 있는 모습은 바로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끼리끼리 사람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아무런 연고 없이 찾아온 사람들이 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오늘. 광화문에 홀로 또 벌쭘하게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다가와서 물었다. "일반인은 어디로 가면 돼요?" 앞에는 '다함께'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은 "그냥 편한 곳에서 크게 외치시면 돼요"였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대학생들은 서대문 방향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한 아이가 앞에 나와 '대학생이 먼저 나서서 민주사회 지킵시다!'라고 외쳤다. 그래, 대학생들, 좀 나서봐라. 나서서 저 아저씨같은 '일반인들'도 이 시위에 편하게 동참할 수 있게 좀 만들어라. 십 몇 년 전,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그랬다. 사람들과 함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싶어하면서도 우리끼리만 알 수 있는 노래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사실은 영웅놀이 하느라 다가갈 생각이 거의 없었던 거 같다. 그 모습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간거점에 대한 생각은 더 강렬해졌다. 그게 쇼맨쉽 강한 사람이든, 왕년에 팔뚝질 좀 해 본 언니오빠들이든, 중간중간 흐름을 끊지 않을 (자연스러운) 존재들이 필요하다. 오늘 들리는 소리는 여전히 훼미리마트 앞 '스피커'였는데 오로지 그 목소리만 따라해야 하는 현실이 좀 불쾌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외치고 있는 것 중 하나라도 이뤄진다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섣부른 미래 예측은 필요없다. 아직 우리는 다음 단계를 고민할만큼 이뤄낸 것이 별로 없다.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쉽지 않아서 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포기하지 말자. 지치지 말자. + 이번엔 큰 맘 먹고 뉴스 테마로 트랙백. 흠좀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