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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나는, 터프하게 층을 넣은 단발 머리를 하고, 너바나 티셔츠를 즐겨입고(체크 남방을 허리에 감아주는 센스), 술만 처먹으면 커트 코베인을 따라하겠다며 꿱꿱 소리를 지르곤 했던 '그런지' 청춘이었다. 청바지와 운동화는 더러워질수록 좋았다. 헤어스타일도 부시시할수록 마음에 들었다. 세상 모든 것이 대개는 가소로웠고, 엑스세대 트렌드를 쫓는 애들을 코앞에서 비웃어댔다. 그때는 '나의 세상'이 세상의 전부였다. 시와 음악과 영화와 담배와 술과 친구만 있다면, 베리베리 나이스. 누가 뭐라든, Life is Grunge. 당시 내 힘으로는 구할 수 없었던 뮤직비디오. 친구랑 심심하면 뮤직비디오 카페에 놀러가 곡 하나 하나 신청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던 그 영상. 너바나의 전설적인 라이브 <MTV 언플러그드 인 뉴욕>이 한국에 발매됐다. 작년 가을에 미국에서 나왔으니 한국도 아마 작년말이나 올초쯤 판매를 시작했을 것이다. 인터넷샵에서 처음 이 dvd를 발견했을 때 너무 황당해서 잠시 모니터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득템'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감격과 공포가 공존했다. 열렬히 봤던 그 때 그 기분이 아니면 어떻게 하나. 14년이나 지났고 너도 나도 예전의 '그들'이 아닌걸. 이젠 너바나 음악을 듣는 것도 연중행사가 됐는데. '너바나 팬이라면 반드시 소장해야만 하는 dvd'식의 스티커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유치한 카피임에도, 엄청난 뿌듯함이 몰려왔다. CD에는 수록되어 있지만 당시 방송분에서 빠졌던 'Something in the way'와 'Oh!me'가 합쳐진 오리지널 라이브다. CD로만 열심히 들었던 순간들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몇 곡의 리허설 장면과 당시 스태프들의 증언을 합한 짤막한 다큐멘터리 영상도 포함되어 있다. 자, 이제, 1993년 리와인드: MTV 관계자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핫한 밴드에게 전화를 해서 '언플러그드 공연'을 하자고 했다. 에릭 크랩턴과 머라이어 캐리같은 편안한 스타들이 등장해 엄청난 앨범을 팔아 치웠고, 알이엠과 펄잼도 거쳐갔던 그 공연이다. 놀랍게도 커트는 단번에 수락했다. 그는 무대 위에 촛불장식을 해달라고 했고, 스태프가 '장례식처럼요?'라 물으니 '장례식이라, 그거 좋네'라는 극도로 상징적인 대답을 남겼다. 뜬금없는 너바나 언플러그드 공연를 듣고 공연장을 찾은 팬들은 'Smells like teen spirit'의 색다른 버전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 날 너바나가 부른 유일한 차트 히트곡은 'Come as you are' 하나뿐. 그리고 반 이상이 낯선 커버곡들이었다. 데이빗 보위의 'The man who sold the world', 미트 퍼펫이 무대 위에 올라와서 연주까지 해준 'Plateau'와 'Oh, Me' 등이 셋리스트를 채웠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커트는 관중들에게 짐짓 모른척 질문을 던졌다. "뭔 노래 듣고 싶어?' Rape me!(레이프 유?), In Bloom! 웃자는 신청곡 Jeremy! 등등의 외침을 무시하고 부르는 노래는 리드벨리의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이었다. 1993년 11월 18일. 그 후 채 5달이 지나지 않아 커트 코베인은 세상을 떠났다. 1994년 초 mtv 인터뷰에서 그는 새로운 음악을 할 거라 말했다. 언플러그드 공연은 너바나의 한 챕터가 끝났다는 '상징'의 의미가 크다. 기술적인 문제로 히트곡 연주를 삼간 것도 있겠지만("도대체 in bloom을 언플러그드로 어떻게 연주해야 하지?") 공연 곳곳에서 좋아했던 음악을 되짚으며 휴식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던 게 느껴진다. 반쯤 장난으로, 어쩌면 충동적으로 승락해놓고 후회했을지 모르지만, 무대 위에서 너바나는 자신들이 그저 소리만 지르는 펑크 밴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내고 있다. 가장 숭고한 장면은 커트 코베인이 멤버들에게 "혼자 부르고 싶어"라며 'Pennyroyal tea'를 부를 때다. 다른 멤버들은 별 거 아니라는 듯 한숨 돌리며 휴식을 취하고, 커트 코베인은 어떤 일상의 한 부분처럼 그 노래를 부른다. 최선을 다해서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기타가 있고, 존재하기에 노래를 하는 것이다. 언플러그드 공연의 가치는, 비록 사소한 일부겠지만 어쨌든, 너바나 삶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최적의 상태로 모든 걸 조율한 뒤 노래를 하지만, 그들은 쇼를 하고 있다기보다 그저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어차피 쇼야. 알아서 편집하겠지"라는 비아냥조차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과 또 다른 차원으로, 우리는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인사를 시간을 초월해 목격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20대의 그런지 소녀는 이젠 없다. 공연이 계속 되는 동안 그런지 스타일을 악세서리 정도에 압축해 넣어 살고 있는 30대는 마냥 부끄러웠다. 그건 커트 코베인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열정이 전부였던 지난 청춘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여전히 커트 코베인을 사랑하고, 너바나를 사랑하고, 나의 20대를 사랑한다. 이 3개는 나에게 분리될 수 없는 90년대 패키지 같은 것이다. 커트 코베인은 잊지 말아야할 것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키워드다. 촌스러운 반성법일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지킬 거라 생각했던 가치들을 되새김하는 주문이기도 하다. 나의 추모주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come as you are,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열혈 팬의 기특한 블로그 nirvanamagazine.blogspot.com 다운로딩 가능한 매거진이 훌륭하다. 초상권 관계 없다면 이런 매거진을 만들어보는 것도 즐거운 작업일 듯. dvd trailer p.s 또 하나의 소장가치. 푸파이터스로 미국 최고의 뮤지션으로 오르신 데이브 그롤의 야심찬 눈빛과 껄렁한 태도를 함께 감상 가능. 그때 나는 데이브 그롤을 심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 4월 8일까지는 심하게 감상적 모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