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수로 생활하다가 어찌어찌하여 메인스트림 요리대결에 참여하게된 주인공 성찬. 예선전이 시작되자 조류, 어류, 육류라는 재료가 화려하게 공개된다. 관객입장에선,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한 가득인데 고수의 기술은 간 데 없고, 가사 교과서에 나올 법만 비주얼의 요리들만 휘리릭 지나간다. 더 멋진 요리담이 나올련가 싶어 한참을 기다렸지만 <식객>은 요리영화라는 수식어가 부끄러울 정도로 '요리쇼'엔 별 관심이 없다. 대신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 시대와 성찬의 과거가 번갈아가며 플래시백된다. 그러면서 대결 주제가 등장할 때마다 요리사의 요리가 아닌, 요리사의 사연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유는 단 하나. 감동을 위해서다. 그리고 점입가경. 순간의 눈물을 위해 개연성을 자랑스럽게 무시해 나간다.
최고의 숯을 찾아나선 성찬 일행은 바쁜 대결 기간 와중에 사형수인 숯쟁이를 찾아가 그의 가족 문제를 해결하고, 사형 후 장례식까지 참석하는 일정을 소화해낸다. 성찬의 구구절절 과거도 모자라 이야기 전개와 별 상관 없는 숯쟁이의 가슴 아픈 과거까지 대면해야 한다. 그런가하면 최고의 한우를 찾는 결선은 더 가관이다. 어떤 소를 봐도 양에 안 차던 성찬은 동생처럼 여기던 자신의 소를 잡기로 결심한다. "네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께"란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린 그가 하는 건 한우 해체 작업이다. 결선 승부 과제가 '요리'가 아니라 '해체'였던 것. 요리사가 요리가 아닌 고기 해체로 실력을 평가받는 상황이다. 물론 여기서도 성찬과 소와 관련된 '사연'이 구구절절 나열되며 눈시울을 적신다(푸흣).
감동을 위한 궁극의 히든카드는 민족주의다. 고급 일식 복어회로 시작한 영화는 막판에 한국 서민음식의 정신을 극찬하고 나선다. 한국음식 제대로 지켜온 성찬의 할아버지는 명예를 회복하고, '내선일체' 음식으로 시대에 살아남았던 봉주의 집안은 졸지에 '매국노'가 된다. '장인 vs 장사꾼'의 성찬과 봉주 구도가 갑자기 '애국자 vs 매국노'로 치환되면서 성찬의 승리는 곧 '한국의 승리'가 된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요리가 아니라 요리에 얽힌 사연과 의미다. 육개장을 두고 "알맞게 익은 고사리는 어쩌구, 최고 육질의 한우 양지는 어쩌구"라며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일장연설이 이어지고 만다. 한국음식 자랑스러운 건 알겠는데, 왜 음식 자체의 훌륭함은 제쳐두고 얽힌 사연만으로 요리를 판단해야 하는가.
코스요리도 이런 엉터리 코스 요리가 없다. 부분이 모여 커다란 하나의 맥락을 형성하지 못하고, 일관성 없는 부분의 맛을 강렬한 디저트 하나가 장악하는 식이다. <식객>은 화학 조미료로 무장한 요리와 같다. 미각을 마비시킨 뒤 강한 맛 하나만 내세워 음식의 인상을 남기자는 속셈이다. 재료를 뭘 썼는지 알게 뭔가. 사람들은 대충 간만 맞으면 맛있게 먹는데. 웃긴 건 <식객>의 이런 상업주의 마인드가 영화 속에서 줄기차게 악역으로 몰고가는 봉주의 것과 똑같다는 점이다. 엄청난 모순이 아닌가.
주제(상업주의보다는 전통의 장인정신)를 거스르면서 요리영화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식객>의 전개 과정은 한국영화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컨셉트는 있는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부족한 상황, 혹은 500만 관객을 위해 모험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원동력이다. 그 결과 <식객>은 각종 클리셰들이 억지 조합을 이루고 있는 영화가 되었다. 감동을 주는 방식, 한국음식에 대한 태도, 감초같은 조연의 이용, 인물들의 트라우마, 일본에 대한 적대적 시선, 식민지 시대에 대한 피해의식 등 어느 한 구석 창의적인 데가 없다(허영만 원작을 애기하는 게 아니다). 정작 아이디어가 빛나야할 부분은 캐릭터와 요리 장면들인데 만드는 이들은 새로운 걸 생각하기 귀찮으니까 아예 그 부분을 축소시켜 버렸다. 그래서 자꾸 클리셰적인 '전통'에 이끌려다니는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주인공 성찬은 처음 된장찌개를 제외하곤 어떤 장면에서도 즐겁게 요리하지 않는다. 요리에 대한 자의식 자체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에게 요리는 차라리 강박관념으로 느껴진다. 최고로 인정을 받는 이유도,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서가 아니라 조선의 비법을 제대로 전수한 요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식객>의 주인공들 누구도 '개성'을 보여주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평가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은 늙은 평론가들의 몫이다. 요리에 대한 자존심도 남달라보이건만, 성찬은 고집스런 외모에 비해 하향 평가에 대한 저항도 한 번 하지 않는다. 전통수호에 대한 관심도 없 보인다. 그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가 그렇게 끌고 가는 것일뿐.
이럴수가! <식객>의 인물들은 요근래 본 한국영화들 중에서 가장 수동적이며 보수적이다.
이 긴 글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다. 나는 도대체 적극성과 거리가 먼 이 고리타분한 인물들이 젊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아니,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 너무 감정적인 판단이라 차마 말 못하겠다).
대충 잘 버무려서 감동만 주면 만사 ok라는 영화계 매너리즘의 본보기. 나이먹은 걸 자랑으로 여기는 꼰대 어른들이 꿈꾸는 젊은이상의 이미지화. 거기에 별 재미없이 소비되는 음식 문화의 현재가 <식객> 안에 모두 있다. 억지 감동 강요하는 영화에 짜증내고, 장기말처럼 미션 수행에 바쁜 일차원적 캐릭터에 진저리치고, 영화만큼이나 멋진 음식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식객>의 모든 것을 거부해야 한다. <식객>은 '소재발굴' 빼고는 배울 점이 하나도 없는 레시피다.